◀◀◀[제1부 최종회] 나의 몰락(4)-1▶▶▶

 

 

 

82년 OB의 코칭스태프는 감독인 나 김영덕, 투수코치 김성근이, 타격코치 이광환이, 이렇게 딸랑 3명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땐 워낙 선수층이 얇았으니 뭐 당연한거였지. 어쨌든 당시 우린 6개 구단 최고의 코칭스태프였고, 사실 우리가 잘해서 우승을 한거나 마찬가지야. 재일동포인 나와 성근이가 일본식 관리야구를 통해 선수 애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고 막 다그쳐 놓으면 광환이는 선수 애들을 맏형처럼 잘 보듬어주는, 혼자 착한척 하는 역할을 맡았지. 알겠지만 광환이는 나중에 '자율야구'인지 뭔지 하는 미국식 야구를 정착시킨  장본인이잖아. 이런 상반되는 성향이 잘 조화를 이루어 OB를 좋은 팀으로 만든거지.
근데 83년 후기리그때 '사건'이 생겼어. 새감독을 영입할 계획이 있던 삼성이 성근이를 살짝 만나 오라고 꼬신거야. 바보같은 성근이는 나한테 이 얘기를 했구. 음, 이후 내가 무슨 수작을 벌였는지는 말 안할께. 아무튼 10월25일 김영덕이 삼성 새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공식발표가 났고, 성근이는 자신으로부터 삼성감독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내가 사전  공작을 통해 자리를 빼앗았다고 믿고 이를 갈았지. OB 애들도 돈 때문에 내가 자기들을 헌씬짝 버리듯 내팽겨쳤다고 생각했고. 마침 성근이가 OB 감독이 되면서…… OB와 삼성은 만났다 하면 패싸움을 하는 사이가 되버린거야.
84년 4월 12일,두 팀의 경기가 있었는데 OB 신인 나부랭이인 배원영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내 (차마 내 입으로는 말 못하는)별명을 나불거리드라구. 내 성격에 가만히 있었겠어? 쫓아가서 뺨을 사정없이 갈겨줬지. 이 날은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는데, 5월 12일 대전경기에서 계형철이가 빈볼을 던지고 김일융이가 역시 빈볼로 맞대응하면서 처음으로 패싸움이 벌어졌어. 5월 14일 대구 경기에선 구천서(OB)가 관중이 던진 병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고. 호세 물병맞은건 아무것도 아니지. 다음 6월 2일 대전 경기가 제일 재밌었는데, 이홍범(

OB)이가 2루 슬라이딩을 하면서 우리 오대석이 허벅지를 스파이크로 찍은거야, 로마이어하구 비슷하게. 당연히 우리 덕아웃에서 와 하고 몰려나갔고 걔네들도 와 하고 몰려나왔지. 싸움들도 참 열심히 잘하두만. 음, 요새는 이런 구경하기 힘드니…… 여러분들도 아쉽지?

이런 지경이었으니 84년 9월 22일, 23일에 OB를 피하기위해 롯데한테 일부러 져줄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심정을 여러분들도 이해해줘야 돼. 롯데도 얼씨구나 할 일이잖아. 자기들 한국시리즈에 보내주겠다는데. 근데 문제는 롯데 감독 병철이였어. 얘가 머리를 굴려서 베스트멤버를 총동원시키지 않은거야. 동원이도 물론 빠졌구. '져주기에 사활을 건 쪽은 삼성이니까 우리가 어차피 이기게 되어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너무 우리가 이길려고 애를 쓰면 자칫 공범자(사실 맞지만)임이 더 부각되어 바가지로 욕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김영덕이만 엿맥일려면……' 요런 생각을 한게 분명해. 병철이와 난 옛날 한일은행에 같이 있었던, 일종의 '사제관계'였는데 이럴 수 있는거야? 결국 22일 경기는 우리가 7:0으로 앞서나가고 말았지. 그러니 어쩌겠어. 기냥 배팅볼 던지구, 외야 플라이도 콧구멍 후비는 척 하며 떨어뜨리구, 출루해도 뛰지않고 걸어다니구…… 어렵게 어렵게 9:11로 졌지. 병철이 계획대로 나만 직싸게 욕먹었어. 다음날 시즌 최종전에서는 그나마 덜 노골적으로 8:15로 졌구.
요 두경기는 '져주기'말구도 '트리플 크라운 만들어주기'의 측면도 있었어. 만수가 전반기부터 워낙 잘쳐대서 일찌감치 타율, 홈런, 타점 타이틀은 따놓은 당상이었거든. 그래서 기록관리를 위해 시즌 막판 한달정도 아예 경기에 내보내질 않았는데…… 글쎄, 홍문종(롯데)이가 타율 1리차로 접근하고, 김용철(롯데)이가 홈런 2개차로 쫓아온거야. 그러니 어쩌겠어. 용철이야 뭐 2게임에서 홈런 3개만 안치면 되니까 적당히 상대하면 되지만, 문종이는 그게 아니거든. 아예 방망이를 갖다대질 못하게 해야 하니깐 9연타석 고의4구 쇼를 벌였지 뭐. 이것도 의미있는 기록이잖아? 타격왕이야 뭐 매년 나오는 거고,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거덩. 히히, 어차피 롯데하구도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던 거라고 봐도 돼.

삼성에서의 마지막, 86년 한국시리즈때 있었던 사건도 불현듯 떠오르네. 10월 22일  대구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우리가 5:6으로 역전패당한 직후에 그 유명한 '사건'…… 수십명의 열받은 관중들이 해태 버스를 에워싼거야. 송곳 정도가 아니라 돌멩이를 들고서. 일단 유리창을 날려버린 다음 신문지에 불을 붙여 안으로 던져넣었지. 롯데도 아닌데 '신문지'들은 왜 가지고 있었는지 몰라. 아무튼 화려한 파이어쇼가 펼쳐졌고 배추머리 김병조 말마따나 다 탔지. 관중들의 난동은 게속 됐구. 근데 웃기는건 이 사건이 나때문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거야, 글쎄. 왜냐구? 사실 광주 1차전에서 이런 일이 있었긴 해. 호투하던 진동한이를 시진이로 바꿨다 3:4로 역전패했거든. 투수교체가 어쩌니저쩌니 또 나만 욕먹을께 뻔하니  머릴 좀 굴려야겠는데…… 마침 동한이가 관중석에서 날라온 병에 머리를 살짝 스치듯 맞았다는 걸 알게된거야. 옳거니, 이거당! 일단 동한이한테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누워있으라구 지시했지. 그리곤 천연덕스럽게,"7회말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던 진동한이 관중이 던진 빈병에 머리를 맞아 교체가 불가피했다"고 나불거린거야. 난 그저 욕이나 안먹을려구 장난을 친건데…… 대구 사람들이 해태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를줄 뭐 알았남?  내가 뭐 버스 태우라구 시켰남?

삼성 시절 해프닝을 얘기하다보니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미국에 전지훈련갔던 일도 생각나네. LA다저스(라소다 걔가 감독이었어) 캠프에 끼어든건데…… 난 불만이 많았어. 얘네들 훈련시간이 너무 짧은데다 '비법'은 안가르쳐 주고 '기본'만 강조해서 말야. 그래서 난 야간훈련을 시키려고 마음먹었지. 근데 이 코쟁이들이 이것도 못하게 하두먼. 칫, 내 고집이 어떤 고집인데…… 무시하고 강행했어. 근데, 으악…… 왠놈의 모기들이 이리 많아! 많기만 한게 아니라 강원도지방 군대 '타이거 모기'만큼이나 살인적이라 비니루로 된 땀복까지 뚫어대니…… 퉁퉁 부어서 에푸킬라 찾아쌌고 하옇든 난리가 아니었지. 히히, 망신도 당하구.
구단에서 이 코쟁이 놈들한테 은밀히 선수와 코칭스태프에 대한 '평가서'를 부탁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이 놈들이 날 뭐라고 썼는지 알어? 글쎄, 내가 '두 얼굴의 사나이'래요. 변덕 좀 부렸다고 그랬남? 아니, 두 얼굴은 헐크 만수지 왜 내가 두얼굴이야?